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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oft 365와 Office 2022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그 외에도 서원의 수입과 지출을 기록한 회계책인 都錄이 다수 남아 있다. 그리고 향시와 문과방목의 사본이 3점이 남아 있다. 이외에도 선대의 기일을 정리해 놓은 기일기가 3점, 이장기, 매장기 등 안장기류가 7점, 물목류로 부조물목 3점, 제향물목 3점이 있으며, 제수에 필요한 물품과 비용을 정리한 치부기가 4점이 있다. 통문 5점 중 3점이 이와 관련된 것이다. 다음으로 소지 25점 중 12점은 강한규촵강하규 등이 지방관으로 재직하면서 받은 소지로 판단된다.金㙆을 중심으로 하는 교지류를 비롯하여 시권ㆍ책문ㆍ방목ㆍ소지ㆍ입안ㆍ물목ㆍ유묵첩ㆍ일기류 등으로,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교지가 46점, 시권 4점, 책문 2점, 방목 2책, 명문 1점, 상소 1점, 소지 5점, 통문 1점, 성문 1점, 입안 1점, 관문 1점, 유지 9점, 물목 2점, 노문 2점, 치제문 1점, 가장초 1책, 간찰 유묵 3첩, 일기 3책, 세계 1첩, 계첩 1첩 등이다. 소지 중에도 의성김씨의 정려각을 청하는 내용이 4점 남아 있고, 상소가 2점 남아 있다. 1) 가문의 위상을 대변하는 자료 현재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집안들이 그렇듯이, 이 집안에도 가문의 위상을 대변하는 자료들이 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과 관련된 동학 및 천도교 관련 자료들이 발굴 조사 정리되지 못하고 유실되고 있다. 심씨(沈氏)가 청송 지역과 연관을 맺게 된 것은 시조로부터 4세에 해당하는 덕부(德符, 1328∼1401) 대(代) 부터이다. 칠곡군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각 읍면사무소 자료를 모두 칠곡군청으로 옮겨와 소장하고 있었다. 시청, 경찰서, 읍면사무소 등 기관과 개인소장자를 포함해 72곳의 자료, 3,150여 건이 수집되었다. 오랜 세월 한 지역 내에서 세대를 거쳐 유의(儒醫)활동과 채약 및 약종상, 조약, 침술 등 전통의약지식을 가업으로서 전승해온 집안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 1997년 사료 수집 지원 사업으로 경북 고령 지역 소장 자료를 간접수집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직접 수집한 경북 예천군 지역 고서 고문서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조사 정리한 함벽당 종가 소장 자료는 모두 68건으로, 이미 간행된 문집(文集)을 제외한 고문서와 필사본 서책류(書冊類)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선 양월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敎旨, 祿牌, 解由文書, 戶口單子, 所志, 明文, 試券, 望記, 行狀 등이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가문이 여말선초에는 문한(文翰)이 성했고 사회적 위상도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달리하거나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한다면 이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많다고 생각된다.宗家나 민간에서 소장한 의약 관련 자료는 현재의 양한방의 의료제도와 기관 시설이 정착되기 이전부터 오랜 세월 家內에서 형성 전수되어 온 전통의료 지식자원의 보고이다. 부산오피 59장으로 되어 있는데, 진주강씨 4파 합본 대동보 중 봉화 춘양 강씨가의 家乘이다. 2) 향촌의 실상을 보여주는 생활일기 이 집안에서 소장한 자료 중 특기할만한 것으로 향촌의 실상을 보여주는 생활일기가 있다. 대원군 집권 이후 이 집안과 영남 남인의 정치적 입장을 보여주는 자료가 다수 남아있다. 그러면서도 학문적 교류라던가 혼인은 영남 남인의 명문가들과 행하였다. 금산군청과 면사무소 기록관에 소장된 자료들은 일제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형성된 행정기관의 공공기록물로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못한 자료들이지만, 지역사 차원에서는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게 확인된 것들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세대를 거듭하여 한 지역에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는 마을 토박이와 집성촌, 종가에서 파편적으로 남아있다.

수집자료의 성격을 살펴보면, 가족과 마을 내에서 발생하는 급환과 응급처치 등을 위해 주위 식생과 도구를 이용한 즉각적인 치료행위를 담은 단방기록 형태가 다수이다. 제문이나 만사를 주고받는 관계는 두 사람 사이가 아닌 가문과 가문 사이의 세교를 증명하는 것인데, 행장이나 묘갈명, 묘표 등을 수수하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전통시대의 영주는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에 위치하여 정치세력의 변동에 따라 큰 변화를 겪었으며 그로 인해 순흥 읍내리 고분벽화에서 잘 나타나듯 다양한 요소가 섞인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이처럼 경주 이씨 양월문중 자료는 문중의 자료만이 아니라 서원과 유향소 자료를 포함하고 있어서 다양한 자료 구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충청도 서북부지역은 1883년 동학이 전래된 이래 동학(천도교)조직을 중심으로 근대변혁운동 및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곳이다. 또한, 구강서원을 중심으로 안강읍 일대에서 세력을 가졌던 유력 사족 집안이었다. 이들 자료는 이조리를 중심으로 조직된 동계의 명단을 기록한 洞案, 이조리를 포함하여 남면에 거주하는 유력사족을 망라한 南面約案, 전 경주부를 대상으로 기록된 鄕案 등, 세 종류가 있다. 이들 문서는 각각 최진립의 셋째 아들 崔東亮(1598∼1664), 동량의 아들 國璿(1631∼1682), 그리고 국선의 6대손 龍鎭(1800∼1883)이 국왕이나 이조로부터 받은 것들이다.